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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에세이

첫인상은 잠깐 같지만 오래 남는다

by Min K 2026. 3. 14.

첫인상은 처음에만 잠깐 스치고 지나가는 느낌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돌아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처음에 무뚝뚝하다고 느낀 사람이 있었는데 어느 날 그 사람이 먼저 커피를 건넸을 때 내 안에서 제일 먼저 올라온 건 고마움이 아니라 의심이었다. 왜 저러지 싶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 반응이 더 이상하다. 친절한 행동을 받았는데도 그걸 바로 친절로 읽지 못했으니까.

그때는 그냥 지나갔다. 사람에 따라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도 그 장면이 계속 남았다. 내가 불편했던 건 그 사람의 행동이 아니라 그 행동이 처음에 내가 만들어놓은 인상과 잘 맞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던 것 같다. 말하자면 나는 그 사람을 새롭게 본 게 아니라 이미 끼고 있던 렌즈로 다시 보고 있었다.

그 사람이 복사기 앞에서 내가 떨어뜨린 종이를 아무 말 없이 주워줬을 때도, 회의 끝나고 문을 먼저 잡아줬을 때도 나는 바로 마음이 풀리지 않았다. 고맙다는 생각보다 “원래 이런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하는 느낌이 먼저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더 낯설다. 상대는 같은 사람인데, 나는 그 사람이 한 행동을 있는 그대로 보는 대신 처음에 만들어둔 인상에 맞는지부터 확인하고 있었던 셈이다.

렌즈는 처음에 씌워진다

나중에 찾아보니 이런 반응을 설명하는 심리학 개념이 있었다. 애쉬(1946)는 같은 성격을 묘사하는 같은 단어라도 어떤 순서로 제시되느냐에 따라 전체 인상이 달라질 수 있다고 봤다. 먼저 들어온 정보가 뒤에 오는 정보를 해석하는 기준점이 되기 쉽다는 뜻이다. 이후 연구들도 첫 정보가 인상 형성에 미치는 초두 효과가 아주 압도적이지는 않더라도 꾸준히 관찰된다고 보고한다(Sullivan et al., 2019).

처음 들어온 정보는 그냥 먼저 들어온 데서 끝나지 않는다. 그다음 들어오는 정보를 읽는 틀까지 만들 수 있다. 내가 그 사람을 처음에 “무뚝뚝한 사람”으로 받아들였던 순간도 비슷했던 것 같다. 그다음부터는 말이 적은 태도도 그쪽으로 읽혔고 조용한 표정도 그쪽 의미를 덧입었다.

렌즈가 차가운 색이면 원래 흰빛도 그 색으로 물들어 보인다. 첫인상이 무서운 건 바로 그 점인 것 같다.

한 번 씌운 렌즈는 잘 안 벗겨진다

왜 첫인상은 그렇게 잘 안 바뀔까. 단순히 처음이라 기억에 남는 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고 느껴졌다. 한 번 인상이 만들어지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그 인상에 맞는 정보가 더 눈에 잘 들어오고 맞지 않는 정보는 예외처럼 밀려나기 때문이다.

Nickerson(1998)은 확증 편향을 사람들이 이미 가진 믿음이나 기대에 유리한 방식으로 정보를 찾고 해석하려는 경향으로 설명했다. 첫인상과 이 경향이 겹치면 “역시 그렇구나”를 확인해주는 정보는 오래 남고 그렇지 않은 정보는 금방 힘을 잃는다. 내 경우에도 말이 적으면 역시 무뚝뚝하다고 느꼈고 먼저 다가오면 오히려 이상하게 느꼈다. 친절이 들어왔는데도 그걸 친절로 보지 못하고 잠깐의 예외처럼 받아들인 것이다.

후광 효과도 비슷한 방향으로 작동한다. 한 가지 인상이 다른 특성 평가에까지 번져나가기 때문에(손다이크, 1920), 차갑다는 첫인상이 있으면 나중의 호의적인 행동조차 그대로 읽히지 않는다. 결국 렌즈가 잘 안 벗겨지는 건 의지의 문제라기보다 구조의 문제에 가깝다. 상대에 대한 정보가 적고 만남이 많지 않을수록, 처음 느낌이 굳을 여지는 더 커진다.

그래도 렌즈에 금이 가는 순간은 있다

그렇다고 첫인상이 끝까지 그대로 가는 건 아니었다. 나도 처음에는 말이 많고 가볍다고 느꼈던 사람이 나중에는 가장 믿는 사람 중 하나가 된 적이 있다. 그때 바뀐 건 설명이 아니었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는 말이 내 인상을 바꾼 게 아니라 어려운 상황에서 그 사람이 실제로 한 행동 하나가 훨씬 크게 남았다. 그 장면은 내가 그 사람을 보던 기존 프레임으로는 잘 설명되지 않았다. 그래서 오히려 오래 기억에 남았다.

아마 첫인상이 뒤집히는 건 좋은 정보가 조금씩 더해져서라기보다 내가 쓰고 있던 렌즈로는 잘 읽히지 않는 장면이 한 번이라도 제대로 들어올 때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첫인상을 고치려고 애쓰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나는 그런 사람 아니야”라고 말하는 것보다, 상대가 가진 첫인상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행동이 한 번 들어오는 편이 더 강하다. 결국 사람을 바꾸는 건 설명이 아니라 기존 인상으로는 처리하기 어려운 경험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요즘은 첫인상을 전보다 완전히 믿지않으려고 한다. 첫 느낌이 틀릴 수 있어서만이 아니라, 처음 본 것을 기준 삼아 그다음의 모든 것을 읽어버리는 일이 생각보다 너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가끔은 사람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사실은 내가 먼저 씌운 렌즈를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걸 알아차리는 순간에야 비로소 상대를 조금 제대로 볼 여지가 생기는 것 같다.

 

※ 이 글은 심리학적 관점을 바탕으로 한 해석 글입니다. 개인적인 어려움이 크거나 오래 이어진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Asch, S. E. (1946). Forming impressions of personality. Journal of Abnormal and Social Psychology, 41, 258-290.

Nickerson, R. S. (1998). Confirmation bias: A ubiquitous phenomenon in many guises. Review of General Psychology, 2(2), 175-220.

Sullivan, J., Wiwad, D., Ames, D. L., & Oveis, C. (2019). The primacy effect in impression formation: Some replications and extensions. Social Psychological and Personality Science, 10(4), 432-439.

Thorndike, E. L. (1920). A constant error in psychological ratings. Journal of Applied Psychology, 4(1), 2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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