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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에세이

돈의 가장 큰 역할은 ‘선택권’을 주는 것

by Min K 2026. 3. 9.

『돈의 심리학』을 읽으며 떠오른 생각 기록

나는 돈을 벌기 위해 시작했던 일이 있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내가 선택한 일이었다. 조건도 나쁘지 않았고 수입도 분명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시작했다.

처음에는 괜찮았다. 내가 원해서 한 선택이니까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버거워졌다. 일정이 겹치고 장거리 출장도 잦았고 생각보다 에너지가 많이 들었다. 다른 해야 할 일들이 밀리기 시작했고 마음은 자꾸 조급해졌다.

겉으로 보면 그냥 일이 많아진 정도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 쪽에서는 조금 달랐다. 하루를 다 쓰고도 내가 원하는 일은 하나도 못 한 느낌이 들었다. 분명 내가 선택해서 시작한 일인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 일이 내 시간을 끌고 가는 쪽에 가까워졌다.

그만둘지 말지 오래 고민했다. 제일 아쉬운 건 수입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 돈이 빠지면 재정적으로 부담이 될 게 분명했다. 그런데 계속 붙잡고 있는 것도 점점 힘들어졌다. 몸이 피곤한 것보다 더 힘들었던 건, 내가 내 시간을 정하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결국 내가 멈추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그 선택이 가능했던 건 최소한 당장 숨이 막히는 상황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일을 놓는다고 해서 생활이 바로 무너지는 건 아니었다. 아주 넉넉한 건 아니었지만 약간의 여유는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여유 때문에 멈출 수 있었다.

그때 처음 알았다. 돈이 많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필요할 때 붙잡지 않아도 되는 상태일 수 있다는 걸.

돈이 주는 건 물건보다 선택권일 때가 있다

『돈의 심리학』에는 이런 취지의 문장이 나온다. 돈이 주는 가장 큰 가치는 시간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라는 이야기다. 그 문장을 읽고 그때의 내 선택이 바로 떠올랐다.

나는 돈이 많아서 그만둔 게 아니다. 그렇지만 전혀 여유가 없었다면 아마 계속 붙잡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만두는 게 비합리적인 선택이 아니라, 애초에 선택지에 들어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일은 단지 돈만을 위해 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성취감도 있고 관계도 있고 내가 선택했다는 의미도 있다. 그래서 돈이 있다고 다 그만두는 건 아니다. 하지만 경제적 여유가 전혀 없을 때는 계속할지 멈출지를 생각하는 문제 자체가 사라진다. 그때 일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이 된다.

여유가 생기면 같은 일도 다른 얼굴로 보인다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을 때는 같은 일을 하더라도 질문이 달라진다. 버텨야 하나가 아니라 계속할까, 여기서 멈출까를 생각해볼 수 있다. 방향을 바꾸는 일이 무책임이 아니라 판단이 될 수 있다.

나는 큰 자산이 있는 사람은 아니다. 그래도 그 경험 덕분에 한 가지는 분명히 알게 됐다. 내가 돈을 벌고 싶었던 이유는 돈을 더 많이 쓰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필요할 때 멈출 수 있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내가 부러워했던 것도 단순히 돈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던 것 같다. 원하지 않으면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사람, 버티는 것 말고도 다른 선택을 해볼 수 있는 사람이 더 부러웠던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요즘은 돈을 볼 때도 질문이 조금 달라졌다. 얼마나 모았는가보다 이 돈이 내 삶에 어떤 선택권을 주는가를 먼저 보게 된다. 당장 쉬어갈 수 있는지, 하기 싫은 걸 무조건 붙잡지 않아도 되는지, 너무 지쳤을 때 한 번 멈출 수 있는지. 그런 가능성이 생길 때 돈은 숫자보다 훨씬 큰 의미를 갖게 된다.

돈의 가장 큰 역할은 더 많이 살 수 있게 하는 것이 아니라,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계속 끌려가지 않을 가능성을 만들어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 이 글은 심리학적 관점을 바탕으로 한 해석 글입니다. 개인의 재무 상황에 대한 전문적 자문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참고문헌

하우절, 모건. 돈의 심리학. 인플루엔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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