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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에세이

계절이 바뀌면 정리하고 싶어지는 마음

by Min K 2026. 5. 2.

계절이 바뀌는 시기에는 이상하게 서랍부터 열어보게 된다. 갑자기 계절에 맞지 않거나 더이상 입지 않는 옷이 눈에 들어온다. 지난 계절 내내 한 번도 손이 가지 않았던 물건도 거슬리기 시작한다. 책상 위에 쌓인 종이까지 괜히 정리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꼭 큰 결심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날이 조금 달라졌다는 이유만으로 공간을 다시 만들어가고 싶어진다.

예전에는 이런 마음을 단순한 습관쯤으로 여겼다. 계절이 바뀌면 다들 대청소를 하니까 나도 따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그 안에는 조금 다른 느낌이 있다. 단순히 물건을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지난 시간을 접어 두고 다음 시간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느낌이다. 물건의 자리를 바꾸는 일 같지만 사실은 내 마음이 머무를 자리를 다시 만드는 일에 더 가까운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정리를 하고 나면 방이 달라진 것보다 내가 조금 달라진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시간의 경계가 보이지 않아도 몸은 먼저 안다

시간에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경계가 있다. 새해 첫날이나 생일처럼 분명한 날만이 아니라 계절이 바뀌는 순간도 그렇다. 아침 공기의 밀도가 달라지고 해가 들어오는 각도가 달라지고 저녁이 내려오는 속도가 달라진다. 그러면 마음도 괜히 지금까지와는 다른 식으로 살아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런 시간의 경계가 생기면 사람은 과거와 현재를 심리적으로 조금 분리해서 느끼고 그래서 다시 시작해 보고 싶은 마음이 커질 수 있다고 한다. 이른바 새 출발 효과는 그런 움직임을 설명하는 개념이다 (Dai et al., 2014). 새해 첫날만이 아니라 월요일이나 생일, 학기 초, 계절의 전환처럼 내가 의미 있게 느끼는 시간의 경계 앞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나는 이 연구를 처음 봤을 때 계절 정리가 단순한 청소 버릇만은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삶이 크게 달라진 것은 없는데도 서랍을 정리하고 옷을 갈아 넣는 일만으로 다시 시작하는 기분이 드는 이유가 거기에 있을지 모른다. 그 움직임은 실용적이라기보다 의식에 가깝다. 아직 완전히 달라진 것도 아닌데 몸이 먼저 경계를 알아차리고 작은 준비를 시작하는 것이다.

정리가 회복인지 불안인지 나도 잘 모를 때가 있다

물론 모든 정리가 건강한 시작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날은 마음이 어지러워서 눈앞의 물건이라도 통제하고 싶은 것일 수 있다. 삶이 잘 정돈되지 않을수록 책상 위 먼지나 옷장의 구김이 더 크게 보일 때가 있다. 그래서 정리는 회복의 신호이기도 하지만 불안의 표현일 때도 있다.

나는 이 둘을 잘 구분하지 못할 때가 많다. 정리를 마치고 나서 후련한 날이 있고 왜 이걸 하고 있나 싶은 날도 있다. 돌이켜보면 후련했던 날은 대개 정리 자체보다 그 과정에서 뭔가를 내려놓는 느낌이 있었다. 반대로 허탈했던 날은 손을 움직이면서도 마음이 딴 데 가 있었다. 그러니 정리의 의미는 결국 물건이 아니라 그 순간 내 마음이 어디에 있었는지에 더 달려 있는 것 같다.

계절성과 생체리듬에 관한 논의에서도 빛의 변화가 수면과 기분에 실제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 이야기된다 (Murray et al., 2003). 그러니 계절 앞에서 마음이 같이 움직이는 것이 아주 이상한 일은 아닌 셈이다. 어떤 정리는 유난이 아니라 변화에 몸이 반응하는 방식일 수도 있다.

두꺼운 옷을 한쪽으로 밀어 두고 자주 입는 셔츠를 앞으로 당겨 놓는 일. 창문을 한 번 크게 열어 두는 일. 묵은 종이를 버리고 책상 위를 비워 두는 일. 이 정도만으로도 마음은 생각보다 빨리 계절을 따라간다. 왜 물건의 자리를 바꾸는 일이 기분에까지 닿는지는 아직도 조금 신기하다. 그런데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이제는 그 충동을 사소하게 넘기지 않으려 한다.

나는 계절이 바뀔 때 생기는 정리 충동을 예전처럼 단순한 습관으로만 보지 않는다. 그건 물건을 치우는 버릇이라기보다 달라진 시간에 내 생활의 속도를 다시 맞춰 보려는 몸과 마음의 신호에 더 가깝다. 정리는 그래서 계절이 달라졌다는 사실을 내 일상 안으로 들여오는 작은 방식인지도 모른다.


참고문헌

Dai, H., Milkman, K. L., & Riis, J. (2014). The fresh start effect: Temporal landmarks motivate aspirational behavior. Management Science, 60(10), 2563–2582.

Murray, G., Allen, N. B., & Trinder, J. (2003). Seasonality and circadian phase delay: Prospective evidence that winter lowering of mood is associated with a shift toward eveningness. Journal of Affective Disorders, 76(1–3), 15–22.